PIANO & M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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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나를 칭찬합니다 ★                                                                              박향희 동화 2011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내 이름은 나종수. 서당초등학교 3학년이지요. 그러나 키도 덩치도 작아서인지 아직도 1학년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어요.

    “아줌마, 과학상자 주세요.”

    내 말에 문구점 아줌마는 상자를 집으려다 말고 묻습니다.

    “1학년용은 없는데…….”

    그럴 때마다 난 기분이 팍 상합니다.

    “저 3학년이거든요!”

    내 목소리가 컸는지 표정이 무서웠는지 갑자기 아줌마가 어쩔 줄 몰라 하며 과학상자를 꺼내 줬어요. 난 당당하게 값을 치르고 과학상자를 들고 학교로 뛰어갑니다.

    그러나 사실 내가 당당할 땐 이럴 때뿐입니다.

    나는 잘하는 게 하나도 없어요. 공부도 그냥 그렇고, 만들기도 그렇고, 축구도 그렇고. 상은커녕 뭐든지 그럭저럭 꼴찌만 안 하는 실력입니다. 그래서인지 우리 선생님은 1학년 때도 나를 가르쳤으면서 기억을 못하는 거 있죠. 공부를 아주 잘했던 것도 아니고, 아주 말썽꾸러기였던 것도 아니고, 그저그런 애라서 기억을 못하나 봐요. 물론 그때는 친구도 없었어요. 축구도 못하고, 말도 잘 못해서 애들이 나를 끼워 주지 않았거든요. 나랑 앉으려는 아이도 없었어요.

    그런데 3학년 올라와서 효민이가 나랑 앉게 되었을 때 싫다고 하지 않아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요. 올봄에 우리 동네로 이사 온 효민이는 나와 학교 갈 때도 같이 가고 집에 올 때도 같이 오는 단짝이 되었어요.

    “글쎄, 잘하는 게 하나도 없어. 공부는 말할 것도 없고 미술도 별로고 음악도 별로야. 덩치가 작아서 그런지 운동에도 소질이 없어. 도대체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럴까? 속상해, 정말.”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또 서울 사는 이모랑 통화하나 봐요. 이모네 아들은 나와 같은 3학년인데 공부도 잘하고 축구도 잘하고 바이올린도 잘해서 무엇을 특기로 정할지 고민이래요. 시험은 만날 백점이라 엄마가 선물 사 주니 좋고, 축구할 땐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아서 좋고, 바이올린 켤 땐 요정들의 합창을 듣는 것 같아서 좋다나요? 뭐, 그런 녀석이 다 있대요? 게다가 왜 나랑 같은 해에 태어나서 비교가 되는지 정말 얄미워요.

    나도 어려서부터 그 녀석처럼 엄마가 시키는 대로 종이접기 학원, 피아노 학원, 축구에 바둑 학원까지 다녔어요. 난 매번 최선을 다했지만 어디서도 소질 있다는 말은 못 들었지요.

    얼마 전 읽기 시간이었어요. 국어사전에서 낱말 찾아오기 숙제가 있었는데 현수하고 나만 못해 갔어요. 사실 나는 못해 간 게 아니라 한 개를 하기는 했어요.

    선생님은 자리를 돌아다니며 숙제 검사를 하다가 내 공책을 보고 찡그리셨어요.

    “나종수, 숙제하기 싫으냐?”

    “사실은, 엄청 많이 찾았는데요…….”

    왜 숙제를 못해 왔는지 설명하려고 하는데 선생님이 딱 끊으셨어요. 그리고 교실 뒤로 나가라고 하셨어요. 내 뒤를 따라서 현수도 나왔고요.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하고선, 내 말은 듣지도 않고…….'

    나는 억울했어요. 우리 반에서 국어사전을 제일 많이 찾은 사람은 나일 걸요? 나는 최선을 다했어요. 정말이에요.

    전날 저녁 집에서 읽기 숙제를 하려고 공책을 폈어요. 그런데 숙제로 내 주신 첫 번째 낱말인 ‘폐허’가 말썽이었어요.

    국어사전의 ‘ㅍ'을 찾아가서 폐허를 찾기는 했는데 거기에는 -파괴당하여 황폐하게 된 터-라고 씌어 있었어요. 그래서 얼른 공책에다가 적었지요. 그런데 ‘황폐'의 뜻이 궁금했어요. '황폐'를 모르는데 어떻게 폐허를 알겠어요? 그래서 찾았더니 거기엔 이렇게 씌어 있었어요-거두지 않고 그냥 버려 두어 거칠고 못 쓰게 됨-그런데 이번엔 ‘거두다'가 좀 이상했어요. 그래서 이번엔 ‘거두다'를 찾았죠. 그런데 거기에는 ①모아들이다 ②기르거나 가꾸거나 하여 뒤를 보살피다 ③어떤 결과나 성과 따위를 얻거나 올리다……. 이렇게 씌어 있지 뭐예요? ‘성과'는 무슨 뜻이고 ‘따위'는 또 어떤 때 쓰는 낱말일까 궁금했어요. 그래서 또 그것을 찾았죠.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모르는 게 계속 나오는데 어떻게 해요? 아직 3학년인 내가 모르는 게 많은 건 당연하잖아요? 그래서 계속 찾다 보니 11시가 넘은 거예요. 평소에는 10시 땡 치면 잤는데……. 국어사전 찾기 숙제가 그렇게 흥미로울 줄은 몰랐어요.

    엄마가 늦었으니 얼른 자라고 해서 그제야 시계를 본 거예요. 시간을 확인하고 났더니 갑자기 졸음이 쏟아졌어요. 그래서 늦잠을 자는 바람에 겨우 가방만 챙겨 가지고 왔어요.

    하지만 내가 최선을 다한 건 사실이잖아요? 나처럼 즐겁게 숙제한 사람이 또 있을까요? 공책에 적어 오지 않았다고 하나도 안 해 온 현수랑 똑같이 벌주다니 너무해요. 초등학생용 국어사전을 찾았으면 단박에 끝냈을 텐데 우리집에 그런 사전이 없는 게 내 잘못은 아니잖아요? 어쨌거나 현수랑 나는 운동장 청소를 해야 했어요.

    그리고 나서 별일은 없었어요.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지만 특별히 못하는 것도 없는 나니까요.

    그런데 그만 일이 벌어졌어요. 우리 학교 운동회 때 생긴 일이에요.

    내게 아주 좋은 기회가 찾아왔지요. 바로 내가 달리기 선수로 뽑힌 거예요. 사실 나는 달리기 실력도 그냥 그래요. 다섯 명이 뛰면 꼴찌는 안 하지만 일등은 해 본 적이 없어요. 운이 좋아서 3등을 한 적은 딱 한번 있었지만…….

    그런데 하필 우리 반 대표 선수를 뽑는 날 영석이가 결석을 한 거예요. 영석이는 유치원 때부터 친구인데 워낙 발이 빨라 항상 1등을 도맡아 하는 아이예요. 선생님은 아쉬워 하셨지만 달리기를 해서 공정하게 선수를 뽑기로 했어요. 3학년 올라와 아이들 체력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나요. 그런데 체육시간이 시작되려고 할 때 민기가 배를 잡고 교탁 앞으로 나갔어요. 선생님 얼굴이 찡그려졌죠. 민기는 영석이 다음으로 달리기를 잘하는 아이거든요.

    “뭐야, 민기. 왜 그래?”

    “저 선생님 배가 아파서……달리기를 못할 것 같…….”

    민기는 얼굴이 하얗게 되어 말도 제대로 못했어요. 선생님은 한숨을 푹 쉬더니 영찬이에게 민기를 보건실에 데려다 주라고 했어요.

    선생님은 '공정하게'라고 한 말 때문인지 나머지 아이들 모두에게 달리기를 시켰어요. 그런데 그만 내가 선수로 뽑힌 거예요. 영석이, 민기 빼고 우리 반에는 거북이들만 모였나 봐요.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는데 말이에요.

    이번 달리기에는 피자까지 걸려 있어요. 반 대항 경주에서 3등 안에 들면 선생님이 피자를 사주신대요. 그래서 내 어깨는 더 무거워졌어요.

    “이번에 달리기 선수로 뽑혔대. 육상에 소질이 있으려나?”

    내가 엄마에게 소식을 전하자마자 다시 이모에게로 전달이 되었어요. 물론 영석이와 민기 얘기는 빠졌죠.

    나는 좀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운동회 날까지 최선을 다하기로 했어요. 선생님과 친구들을 실망시키고 싶진 않았어요. 혹시 알아요? 다른 반 아이들도 우리 반 아이들처럼 거북이라면…….

    그날 집에 오자마자 인터넷에서 달리기 훈련법을 검색해 봤어요. 코치도 감독도 없지만 나는 최선을 다할 거예요.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도 있다잖아요.

    다음 날부터 나는 인터넷에서 찾은 방법대로 훈련을 했어요. 다른 때처럼 효민이랑 걸어오고 싶었지만 참아야 했지요. 난 호흡법에 주의하며 학교 끝나고 집에 올 때도 혼자 뛰어 왔어요. 저녁을 먹고 나서도 동네를 몇 번씩이나 돌며 달이 환히 비출 때까지 달렸어요. 심지어 집에서도 그랬다가 엄마에게 혼날 뻔했죠.

    "나종수, 너 누가 집안에서 뛰래?"

    "선생님이 최선을 다하라고 했는데."

    "그래도 그렇지. 남들이 보면 올림픽 나가는 줄 알겠다."

    엄마의 핀잔에 집안에서의 훈련은 끝이 났지만 다음날 아침에도 훈련은 계속되었어요. 그런데 아침 일찍 학교에 달려가 훈련을 하다 보니 좋은 점도 있었어요. 일주일에 한두 번 지각하던 버릇이 싹 없어졌지 뭐예요? 그래서인지 난 달리기 훈련이 좋아졌어요.

    점심시간에도 다른 애들이 축구할 때 난 운동장 구석에서 혼자 뛰었어요. 그런 나를 보고 몇몇 친구가 응원을 해주었어요.

    "나종수, 파이팅!"

    효민이도 여자애들과 공기를 하다가 나를 보고 손을 흔들어 주기도 했어요. 나는 힘이 나서 더 열심히 뛰었지요.

    몇 주를 훈련하고 나자 출발 자세도 익숙해지고, 호흡도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어요. 정말 내가 잘 할 수 있을까요?

    드디어 운동회 날이 되었어요. 체육복에다 가방도 없어 다른 때보다 더 가뿐하게 학교로 뛰어갔지요. 마지막 훈련이라고 생각하면서요.

    우리 엄마는 잔뜩 기대를 하고 왔어요. 구령대 옆에서 나에게 손짓으로 파이팅까지 보냈다고요.

    그런데 세상에! 어쩌면 좋죠?

    점심시간이 끝나고 반 대항 달리기를 시작할 때였어요. 내 차례가 되자 난 두 주먹을 꽉 쥐고 입을 꼭 다물고 출발선 앞에 섰어요. 그동안 수없이 연습한 자세라서 문제없었어요. '탕' 하고 신호가 울리자 아이들이 냅다 뛰기 시작했어요. 나도 아무 생각 없이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렸어요.

    그런데 바로 내 앞에서 뛰던 녀석이 방귀를 뿡뿡 뀌지 뭐예요. 녀석은 시치미를 뚝 떼고 열심히 달리기만 했어요. 방귀 냄새는 사방으로 퍼졌는지 흔적도 없었지만 뿡뿡 소리가 몇 번 더 들려 왔어요. 나와 옆에서 달리던 아이들이 피식 웃음을 참는 사이 정작 방귀 뀐 녀석은 쭉쭉 앞으로 잘도 나아갔어요. 어쩌면 창피해서 더 빨리 달렸는지도 몰라요. 나는 웃지 않으려고 이를 꽉 물고 열심히 팔 다리를 움직였어요.

    '3등은 할 수 있을 거야.'

    나는 평소에 훈련한 대로 최선을 다했어요. 이제 결승선이 얼마 안 남았어요. 그런데 자꾸 나만 뒤로 처지는 것 같아요.

    둥그런 피자 위로 우리 반 친구들과 선생님 얼굴이 떠올랐어요.

    ‘안돼, 3등은 해야 해.’

    난 앞서 뛰는 친구에게 따라붙으려고 다리를 더 크게 벌렸어요. 그런데 너무 욕심을 낸 걸까요? 다리를 쭉 뻗어 앞으로 내민 순간 쫙 미끄러지면서 그만 넘어진 거예요. 그 사이 내 뒤에 바짝 따라오던 아이들이 나를 제치고 앞서 갔어요. 난 무릎이 아팠지만 꾹 참고 얼른 일어났어요. 앞을 보니 다른 애들은 벌써 결승선 너머에 가서 헉헉대고 있었어요. 팔뚝에 도장 찍는 것도 끝난 것 같아요. 혼자서 거기까지 달려갈 생각을 하니 눈물이 나오려고 했어요.

    그래도 난 용기를 내서 끝까지 달려갔어요. 1등 하는 것보다 최선을 다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선생님이 말씀하셨거든요. 그런데 결승선에는 다른 반 친구들만 모여 있었어요. 우리 반 친구들은 실망해서 모두 자리로 돌아갔나 봐요. 어쩌면 좋죠? 욕심 안 부렸으면 3등은 했을 텐데…….

    옆에서 경기 점수판을 적고 있던 선생님을 쳐다봤더니 못 본 척 눈을 마주치지 않으셨어요. 갑자기 몸도 마음도 뻣뻣해지는 것 같았어요.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숙이고 우리 반 자리로 돌아왔어요.

    “다친데 없지?”

    우리 반으로 찾아온 엄마가 이렇게 물었을 때 갑자기 엄마 가방 속 휴대폰이 울렸어요. 발신자를 확인한 엄마가 지갑에서 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 주었어요.

    "중요한 전화야. 이따 집에서 보자."

    휴대폰을 받으며 운동장을 빠져나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천천히 자리로 와서 앉았어요.

    "너 때문에 피자 날라갔잖아."

    영석이와 민기가 나를 보며 화난 얼굴로 말했어요. 난 점점 고개가 수그러졌어요.

    "미……."

    미안하단 말을 하려고 했는데 너무 미안하니까 말도 나오지 않았어요. 나는 말도 못하고 그냥 땅바닥만 내려다보았어요.

    그때였어요.

    “아까 많이 아팠지?”

    눈앞에 무지갯빛 포장지에 싸인 막대 사탕이 불쑥 나타났어요. 고개를 들어보니 효민이가 웃고 있어요. 효민이가 준 사탕을 먹고 있으니 뻣뻣해진 마음이 조금 녹는 것 같았어요.

    운동회가 끝나고 나는 효민이도 먼저 보내고 학교에서 늦게 나왔어요. 아까 넘어져 다친 무릎이 쓰라렸지만 집에 빨리 가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문구점 앞을 지날 때 갑자기 비가 후드득 쏟아졌어요. 어떤 아이가 '상'도장 찍힌 공책으로 머리를 가리고 뛰어갔어요. 나도 3등쯤 했다면 저런 공책을 받았을 텐데……. 그 아이 팔뚝에 빨갛게 찍힌 '1등' 글씨를 보니 다리가 또 뻣뻣해지는 것 같아요. 비가 내려도 뛰어갈 수가 없어요.

    난 허리를 굽히고 체육복 바지를 걷어봤어요. 무릎에 살짝 배어나온 피가 빨간 도장처럼 찍혀 있어요.

    "어이구, 아프겠네."

    돌아보니 문구점 아줌마가 나를 보고 있어요. 아줌마는 내 손을 잡더니 문구점 안으로 당겼어요.

    "일기예보에도 없는 여우빈가 보다. 그러고 보니 너, 아까 넘어진 아이로구나."

    아줌마도 달리기 경주를 봤나 봐요. 아줌마는 내 무릎에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여 주며 웃었어요.

    "손목대신 무릎에 도장을 받았네."

    그리고 손으로 젖은 내 머리를 털어내며 말했어요.

    "괜찮아. 최선을 다했으니 1등이나 마찬가지야."

    약 때문인지 아줌마가 한 말 때문인지 뻣뻣한 다리가 풀리는 것 같아요. 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가만히 서 있었어요. 주머니 속에 있던 천 원짜리가 만져졌어요. 나도 '상'공책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나는 천 원을 만지작거리다가 용기를 내서 아줌마에게 말했어요.

    “아줌마 공책 주세요.”

    “그래, 무슨 공책 줄까? 일기장? 알림장?”

    “아니, '상'공책이요.”

    아줌마는 무슨 말인지 몰라 머뭇거렸어요. 나는 공책 두 권을 찾아들고 아줌마에게 천 원을 내밀었어요.

    ‘항상 최선을 다하는 나종수를 칭찬합니다.’

    오늘, 나는 처음으로 내가 주는 상을 받았습니다. 내 마음도 뿌듯해서 어깨가 쭉 펴졌어요.

    "어? 여우비 끝에도 무지개가 뜨네."

    아줌마 말에 고개를 들어보니 그새 비가 그치고 머리 위로 무지개가 떠 있었어요. 반달눈으로 웃고 있는 무지개 아래에서 아줌마와 나는 서로 마주 보며 활짝 웃었습니다.







    책 너머 세상 ★                                                                                  신지영 동화 2009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너, 이게 뭐니?”
    엄마가 승민이에게 공책을 내밀며 물었다. 
    “뭐긴 뭐야? 독후감 공책이지.”
    “그걸 누가 몰라서 물어? 내용을 왜 이렇게 썼느냐는 말이야.”
    엄마가 짜증스레 공책 한쪽을 펼쳐 보였다. 

    플란다스의 개를 읽고……. 
    되게 슬펐다. 무지 슬프다. 내가 읽은 책 중에 1등으로 슬프다. 
    클릭하시면 원본 보기가 가능합니다. 
     
    “그렇게 독후감 쓰는 법을 알려 줬는데, 다 귓등으로 들었니? 슬프다, 슬프다 하면 읽는 사람 마음에 와 닿아? 뭐가 슬픈지 써야 할 것 아니야.”
    “그걸 꼭 써야 돼?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다 느낄 텐데, 그냥 마음속에 담아두면 안 되는 거냐구.”
    “어디서 주워들은 말은 많아서, 이제 겨우 사학년인 녀석이 요리조리 빠져나갈 궁리만 하니……, 네 미래가 걱정이다, 엄마는.”
    “걱정 마, 엄마. 난 괜찮을 거야.”
    “괜찮기는 뭐가 괜찮아? 얼른 다시 안 써? 다시 쓸 때까지 컴퓨터 금지야.”
    승민이는 터덜터덜 책상 앞에 가 앉았다. 
    며칠 전, 엄마는 동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왔다. 
    “책을 많이 읽으면 아는 게 많아져서 공부도 잘하게 되지. 앞으로 엄마가 책 빌려다 놓을 테니까 일주일에 세 권씩 꼬박꼬박 읽어야 해.”
    엄마는 승민이에게 독후감 공책을 사다 주었다. 책을 읽을 때마다 독후감을 써서 검사 맡으라고 했다. 엄마는 인터넷을 통해서 ‘독후감 쓰는 법’을 알아냈다. 그걸 종이에 정성스레 적어서 승민이의 책상 앞에 떡하니 붙여 두었다. 
    “꼭 저대로 써야 한단 말이야? 수학 문제 푸는 것도 아니고, 재미없잖아.”
    승민이는 고개를 홰홰 저었다. 그러곤 침대에 발랑 드러누워 버렸다. 두그르르 앞구르기를 했다. 물구나무도 서 봤다. 그러는 동안, 상상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갑자기 승민이는 발딱 일어났다. 쇠가 자석에 이끌리듯 책상 앞으로 가 앉았다. 
    승민이는 신나게 글을 써 내려갔다. 

    네로랑 파트라슈는 날개를 달고 천국으로 날아간다. 그곳은 개들이 주인인 세상이다. 거기에서는 네로가 파트라슈의 애완동물이다. 
    지구에서 개들을 못살게 굴던 주인들은 자기들이 한 나쁜 짓을 그대로 당한다. 스트레스가 쌓일 때마다 개한테 옆차기를 하던 아저씨는 개한테 옆차기를 당한다. 개에게 상한 음식을 먹이고 재미있어하던 아이는 상한 음식을 먹고 웩웩 토한다. 네 발로 기어 다니며 우유 수레를 끄는 사람도 있다. 그건 바로 파트라슈를 채찍으로 때렸던 첫 주인이다. 

    “너 정말!”
    엄마가 어느새 승민이의 곁에 와 있었다. 엄마는 씨근거리며 공책을 집어 들더니 방바닥에 내팽개쳤다. 
    “천국이 왜 나오고, 네로가 애완동물이라는 건 또 무슨 소리야!”
    “뒷이야기를 상상해서 쓴 거야. 플란다스의 개 제2탄.”
    “파트라슈 옆차기 하는 소리 하고 있네. 읽고 나서의 느낌이랑 생각을 쓰랬지, 누가 2탄 쓰랬어?”
    “이렇게 쓰니까 재미있어.”
    “넌 그게 문제야. 그렇게 재미만 찾으니까 공부를 못하지.”
    엄마가 한심하다는 눈길로 승민이를 보았다. 승민이는 아랫입술을 배쭉 내밀었다. 
    “안 되겠다. 공책이랑 필통 들고 마루로 나와.”
    엄마와 승민이는 밥상을 앞에 두고 나란히 앉았다. 엄마는 밥상 위에 독후감 공책을 척 올려놓았다. 승민이는 쭈뼛쭈뼛 연필을 쥐었다. 
    “먼저 책을 읽게 된 동기를 쓰자. 왜 이 책을 읽었지?”
    “엄마가 읽으라고 시켜서.”
    “좀 예쁘게 쓰자. ‘엄마께서 권유하셔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하면 좋겠지?”
    승민이는 엄마가 말한 대로 받아 적었다. 
    “자, 이제 주인공과 너 자신을 비교해 보자. 어떤 점을 비교해 쓸까?”
    “음…… 네로는 우유 배달을 하지만, 나는 우유를 배달시켜 먹는다.”
    “말장난하니? 그건 중요하지가 않아.”
    “음…… 네로한테는 여자 친구가 있지만, 나는 없다. 네로처럼 여자한테 친절해야 누구를 사귈 수 있을 텐데……. 나는 마음은 안 그런데 자꾸 쌀쌀맞게 굴고…….”
    “누가 그딴 거 쓰래? 그게 대체 왜 중요한 거냐고!”
    엄마는 벌떡 일어나 발을 쾅 굴렀다. 
    “내가 못 살아. 대체 넌 누구를 닮아서 이러니?”
    엄마가 털썩 주저앉았다. 승민이는 고개를 숙인 채 숨을 죽였다. 
    얼마 동안, 시계 초침 소리와 엄마의 가쁜 숨소리만 들렸다. 
    “다시 해 보자. 또 이상한 대답하면 혼날 줄 알아.”
    엄마가 승민이 옆으로 바싹 다가앉았다. 
    “네로는 할아버지 말 잘 들어, 안 들어?”
    “잘 들을 걸.”
    “넌 엄마 말 잘 들어?”
    “그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지.”
    “어이구, 그럴 때도 있으셔? 엄마 말이라고는 징그럽게 안 들으면서, 무슨.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쓰면 되겠네. ‘네로는 할아버지 말을 잘 듣는다. 하지만 나는 엄마 말씀을 잘 듣지 않아 혼나곤 한다.’라고.”
    승민이는 그대로 받아 적었다. 
    “네로는 행복해, 안 행복해?”
    엄마가 물었다. 승민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지.”
    “행복할 리가 있니? 고아인 데다가 가난하지, 집에서 쫓겨나 어린 나이에 죽기까지 했는데.”
    엄마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너는 행복해, 안 행복해?”
    엄마가 물었다. 승민이는 또 고개를 갸웃거렸다. 
    “때에 따라 달라.”
    “너는 행복한 거야. 네가 뭐가 아쉬워? 아빠가 돈 벌어다 주지, 엄마가 보살펴 주지. 자, 적어 봐. ‘네로에 비하면 나는 참 행복한 아이다. 나는 네로처럼 가난하지도 않고 엄마 아빠도 있다.’ 이런 식으로.”
    승민이는 엄마가 말한 대로 받아 적었다. 글씨가 자꾸 비뚤어졌다. 
    “이제 너의 경험과 책의 내용을 비교해서 써 보자.”
    승민이의 머릿속에 번뜩거리는 장면들. 하얀 털이 몽실몽실한 강아지, 똥 한 덩어리, 악쓰며 강아지에게 다가가는 엄마, 겁에 질려 뒷걸음질 치는 강아지……. 
    “몽몽이는 잘 있을까?”
    승민이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엄마는 흠칫하더니 곧 태연한 얼굴을 했다. 
    “그럼, 잘 있지 않구. 우리보다 훨씬 좋은 주인이 데려다가 키우고 있는 걸. 좋은 사료 먹이고, 좋은 옷 입히면서 말이야.”
    엄마가 호들갑스레 말했다. 승민이는 연필 끝을 입에 물고 잘근잘근 씹었다. 
    “딴 말 하지 말고, 쓰던 거나 계속 쓰자. 책 내용 중에서 네 경험과 비교할 만한 걸 찾아보자는 말이야. 아, 그래. 네로가 할아버지의 일을 도와 준 것처럼, 너도 엄마 아빠를 도와 준 경험이 있지? 그것에 대해서 쓰면 되겠구나.”
    “차에 치였으면 어떡하지? 몽몽이는 밖에 많이 안 나가 봐서 차 피할 줄도 모르는데…….”
    “이상한 상상은 그만하고, 여기 집중해.”
    엄마의 말투에 짜증이 섞였다. 
    “몽몽이, 울고 있을지도 몰라.”
    “상식적으로 말이 되니? 개가 운다는 게…….”
    “진짜야! 몽몽이는 나 없을 때 외로워서 눈물을 흘렸단 말이야! 학원 갔다 와서 보면 눈에 눈물이 꽉 차 있었다구.”
    승민이가 버럭버럭 소리 지르고는 연필을 책상에 팽개쳤다. 
    “얘가 왜 이래? 버릇없이. 연필 똑바로 안 쥐어?”
    엄마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날카롭게 말했다. 
    “엄마가 몽몽이를 갖다 버렸잖아. 나한테 말도 안 하고…….”
    “버리긴 뭘 버려? 키워 준다는 집 있어서 데려다 놓았다니까.”
    “아빠가 그랬어. 엄마랑 밤에 공원에 가서 놓고 왔다고.”
    승민이가 엄마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엄마의 얼굴이 붉어졌다. 
    “밤이지만 바람 쐬러 온 가족들이 많았어. 개 좋아할 만한 네 또래 애들이 많았단 말이야. 우리가 키우기 힘드니까 다른 집에서 잘 키우면 되겠다 싶었던 거야.”
    “처음에 몽몽이를 데려온 건 엄마잖아. 버릴 거면 아예 데려오지를 말지.”
    몽몽이는 승민이의 좋은 친구였다. 성적이 좋지 않다고 엄마한테 혼났을 때, 친구와 다투었을 때에도 몽몽이를 보면 마음이 풀렸다. 몽몽이의 눈빛이 “힘내.”하고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승민이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그렇게 성가실 줄 누가 알았니? 똥오줌도 못 가려, 털 날려…….”
    “강아지는 원래 그래. 엄마가 모른 거지. 내가 돌봐주면 되는데, 꼭 그래야만 했어?”
    “너 학교 가고 학원가면 누가 돌보는데? 내가 다 뒤치다꺼리해야 하는 거 몰라서 그래? 엄마 힘든 건 생각 못하니?”
    “엄마보다, 그깟 개 한 마리가 더 중요해?”
    엄마가 덧붙였다. 엄마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승민이는 입을 꾹 다문 채 가만있었다. 엄마는 승민이를 등지고 앉았다. 그러곤 바닥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잠시 후, 승민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 쓸 얘기 생각났어.”
    엄마가 누그러진 얼굴로 돌아앉았다. 
    “몽몽이 얘기를 쓸 거야.”
    승민이가 말했다. 엄마는 펄쩍 뛰었다. 
    “아니, 그걸 왜 써?”
    “책 내용이랑 비교할 수 있잖아. 네로가 파트라슈를 키웠던 것처럼 나는 몽몽이를 키웠고……. 파트라슈는 버려진 개였고 몽몽이도 버려졌고…….”
    “안 돼, 다른 얘기를 써!”
    “싫어.”
    엄마가 눈을 부라렸다. 승민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연필을 쥐었다. 
    나는 몽몽이라는 강아지를 키웠다. 
    엄마가 연필을 홱 낚아챘다. 
    “너……. 이런 식으로 해 봐. 앞으로 영원히 컴퓨터 못 할 줄 알아. 용돈도 없어!”
    엄마가 윽박질렀다. 
    “지워!”
    엄마가 승민이에게 지우개를 건넸다. 
    승민이는 망설였다. 그러다가 마침내 방금 쓴 문장을 지웠다.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져 공책에 번졌다. 

    나도 네로처럼 어른을 도운 적 있다. 엄마가 아플 때 청소를 해서 칭찬을 들었고, 아빠의 어깨도 주물러 드렸다. 앞으로 나는 네로를 본받아 더욱 착한 아이가 되겠다. 어른들 말씀도 언제나 잘 듣겠다. 네로같이 불쌍한 아이를 만나면 도와주겠다. 

    방에 들어온 승민이는 공책을 함부로 내팽개쳤다. 침대 위에 누워 이불을 머리끝까지 들썼다. 훌쩍훌쩍 울다가 잠이 들었다. 

    승민이는 낯선 길에 서 있었다. 주위가 안개로 둘러싸인 듯 아슴푸레했다. 저만치 앞에 몽몽이가 나타났다. 몽몽이는 따라오라는 듯 승민이를 히뜩 보고는 곧장 달려갔다. 승민이는 몽몽이를 따라 뛰었다. 
    어느 순간, 몽몽이가 멈춰 섰다. ‘개들의 천국’이라고 씌어 있는 팻말이 보였다. 
    “와, 내 상상이 진짜였구나!”
    승민이가 감탄했다. 
    “그렇지, 여기에서는 너희가 우리의 애완동물이라구.”
    몽몽이가 말했다. 그게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다. 
    몽몽이가 팻말이 가리키는 길로 접어들었다. 승민이는 설레는 마음으로 따라갔다. 조금씩 안개가 걷혔다. 주위의 풍경이 똑바로 보였다. 승민이가 서 있는 길에서,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각각 다른 풍경이 보였다. 
    동쪽은 봄이었다. 연둣빛 들판이 양탄자처럼 펼쳐져 있었다. 색색의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개고 사람이고 할 것 없이 마음껏 들판을 뛰고 뒹굴었다. 서쪽은 여름이었다. 초록빛 풀들이 다보록한 가운데, 맑은 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개헤엄을 치는 사람도 있었고, 사람 헤엄을 치는 개도 있었다. 남쪽은 가을이었다. 사과, 밤, 홍시……. 탐스러운 과일을 매단 나무들이 곳곳에 우부룩했다. 바닥에도 과일이 수북했다. 어떤 개들과 사람들은 사과 바다에서 허우적허우적 헤엄을 쳤다. 또 어떤 개들과 사람들은 홍시를 공처럼 주고받으며 옷에 주황 물이 들도록 놀았다. 
    “난 어디로 가야 돼?”
    승민이가 몽몽이를 내려다보고 물었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네가 내 주인이니까.”
    “네 마음대로 해. 여기서는 주인이 애완동물을 돌봐 주지 않아. 뭘 시키는 법도 없어. 자유롭게 놔 둘 뿐이지.”
    어디로 갈까? 승민이는 즐거운 고민에 잠긴 채 북쪽을 보았다. 
    눈부시게 하얀 눈으로 뒤덮인 세상. 아이스크림 같은 눈이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폴짝폴짝 눈 속을 누비고 다니는 개들과 사람들……. 언덕 위에는 승민이 엄마도 있었다. 엄마는 배를 깔고 엎드리더니 미끄럼을 타고 내려왔다. 엄마의 웃옷이며 바지에 눈이 닥지닥지 묻었다. 엄마를 지켜보던 몽몽이가 멍멍 웃었다. 엄마는 대답하듯 하하 웃었다. 눈투성이 엄마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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